"갑자기 3억을 어디서 구하나"…화곡동 집주인들 '패닉'

입력 2022-11-23 07:32   수정 2022-11-23 09:16


2주택자 정모(62)씨는 최근 밤잠을 설치고 있다. 자신이 보유한 서울 강서구 화곡동 아파트 세입자가 갑자기 퇴거하겠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그는 "중개사무소에 물어보니 3개월 이내에 보증금을 돌려주도록 임대차법에 규정되어 있다더라"며 "갑자기 세입자를 구하기도 힘들어 싼값에 전세를 내놨다. 전세보증금 반환 대출도 받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22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전셋값은 올해 들어 3.73% 하락했다. 상반기만 하더라도 변동 폭이 0.3% 수준에 그쳤지만, 전세대란 우려가 나왔던 8월 이후 역전세난이 벌어지며 3% 넘게 급락했다. 일선 부동산 업계에서는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임대차 3법 가운데 계약갱신요구권이 역전세난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규 단지 역전세난에 기존 단지서도 '계약 해지'…집주인들 '화들짝'
강서구 화곡동에는 내달부터 576가구 규모 '우장산 숲 아이파크' 입주가 시작된다. 최근 금리 인상으로 전세 인기가 떨어지면서 세입자를 받아 잔금을 치를 예정이던 이 단지 집주인들 발등에는 불똥이 떨어졌다. 아직 입주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음에도 초기 대비 보증금 호가가 3억원가량 내려갔다. 전용 84㎡ 전세 호가는 8억5000만원에서 5억원으로, 전용 59㎡ 호가는 7억원에서 4억원으로 수직 낙하했다.

일선 중개사무소 사이에서 이러한 하락은 입주 시기에 잠시 나타나는 역전세난으로 취급됐다. 하지만 현재는 화곡동 일대 전세 시장을 뒤흔드는 악재로 자리 잡았다. 기존 단지의 세입자들이 갑작스레 계약을 해지하고 우장산 숲 아이파크 전세 계약에 나선 탓이다.


화곡동의 한 개업중개사는 "기존 살던 곳 바로 옆에 훨씬 저렴한 보증금으로 전세물이 나오니 기존 단지 세입자들이 계약을 중도 해지하고 옮겨가려 한다"며 "갑자기 보증금을 내주게 된 집주인들은 패닉 상태"라고 설명했다. 통상 전세 계약은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에게 2년의 계약기간 준수를 강제한다. 임차인이 중도에 나가려면 중개보수나 손해배상 등 책임을 져야 하기에 중도 해지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럼에도 세입자들이 갑작스레 계약 해지를 통보하는 이유는 주택임대차보호법에 있다. 2020년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신설된 제6조의3에는 세입자에게 1회의 계약갱신요구권을 보장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 조항의 9항에는 '제1항에 따라 갱신되는 임대차의 해지에 관하여는 제6조의2를 준용한다'고 명시됐다. 묵시적 갱신의 계약 해지를 담은 제6조의2는 '임차인은 언제든지 임대인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갱신권 쓴 세입자, 계약 중도 해지 가능…전셋값 '치킨게임'
묵시적 갱신(집주인이 별다른 통보를 하지 않아 계약이 자동 연장)에만 적용되던 계약 중도해지 권한이 계약갱신요구권 행사 계약까지 확대된 것이다. 세입자가 해지를 통보하면 3개월 뒤 효력이 발생한다. 결국 갱신권을 쓴 세입자가 중도 해지를 요구하면 집주인은 곧바로 새로운 세입자를 구해 3개월 뒤 보증금을 내줘야 하는 셈이다.

인근 개업중개사는 "2~3년 전 '강서 힐스테이트' 전용 59㎡ 신규 전세 보증금이 5억원대였다"며 "올해 중순만 하더라도 전셋값이 거듭 오르니 많은 세입자가 보증금을 올리며 갱신권을 썼는데, 직후 신규 단지에서 1억원 이상 저렴한 전세물이 나오자 기존 계약을 중도 해지하려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전세 인기가 낮아진 상황에서 급하게 세입자를 구하다 보니 보증금도 크게 낮아졌다.이 중개사는 "입주장이라 세입자를 구하기도 어려우니 중도 해지를 통보받은 집주인들도 보증금을 크게 낮추면서 일대 전셋값이 동반 하락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작년 7억2000만원까지 올랐던 강서힐스테이트 전용 59㎡ 전셋값은 최근 4억3000만원까지 떨어졌다. 같은 기간 전용 84㎡도 9억원에서 5억5000만원까지 낮아졌다. 7억5000만원까지 올랐던 '우장산 아이파크 e편한세상' 전용 59㎡ 전셋값은 4억3000만원이 됐고 9억원이던 전용 84㎡ 전셋값은 5억7000만원으로 내려왔다. 4년 전 시세와 같은 수준이다.

갑작스러운 세입자의 계약 해지 통보에 반발하는 집주인도 있지만, 보증금 지급을 거부하다간 자칫 집이 경매로 넘어갈 가능성도 있다. 엄정숙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3개월이 지났는데도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전세금 반환소송으로 대응할 수 있다"며 "세입자는 소송을 통해 보증금과 지연 이자까지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세입자가 소송에서 승소했는데도 집주인이 보증금 지급을 거부하면 세입자는 강제 경매 집행을 요구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임대차법 시행 초기에는 집주인이 ‘실거주 사유’로 세입자의 갱신 요구를 거절하는 문제가 많았지만, 전세 거래가 침체하면서 중도해지 문제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며 "연말부터 서대문구, 영등포구 등에 아파트 입주가 예정되어 있어 중도해지 문제가 서울 전역으로 확대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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